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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풍류도인 仙風
작성자 풍류도 (twobead@netclover.com)
작성일 2012-01-20 [23:02:00] 조회수 2,394

 -풍류도 부산 센터 처음 시작할 때, 인연이 된  '고금란' 작가가  '내가 만난 남자들' 이란 책을 내기 위해 쓴 글입니다.-

      

풍류도인 仙風-신현욱

 

고금란

 

 새벽 잠결이었다. 깊은 바닷물 속에서 싱싱한 해초가 해면으로 불쑥 떠오르는 것처럼, 그 이름이 생각난 것을 보면 무의식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풍류도인 신현욱으로 입력된 전화번호를 누르면서 행여 번호가 바뀌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구성진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이 그리워 운다~~~”

특유의 노랫가락을 들으니 귀티나는 얼굴과 함께 내 입가에 저절로 웃음기가 돌았다. 전화는 예상과 달리 센터를 지키고 있는 여인이 받았고, 그의 근황을 전해주었다.

 “원장님은 지금 캐나다에 두 달 째 머물고 있는데 삼일 뒤에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다행이다. 어제 출국했는데 두 달 뒤에 돌아온다고 했으면 어쩔 뻔 했나? 아무튼 사흘 뒤에 우리는 서로 연락이 되었고 그 다음날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칠년만의 만남이었다.

 

 2001년 봄부터 친구의 권유로 풍류도 수업을 받기 시작했었다. 부산에 풍류도 센터가 생기기 전이었으니 나는 그야말로 초창기 멤버였다. 악기 하나 다루는 것이 꿈이었던 나는 그때만 해도 장구를 배우겠다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신 원장이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풍류도 수련은 악기의 리듬을 활용하여 기와 호흡을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것을 기초로 하고 있다. 세상을 음악 리듬을 타듯이 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일이 무어 있을까?

 그는 관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노래와 악기와 운동을 이용하여 본성을 일깨운다는 거창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기가 응축되어 나오는 것이 흥인데 흥겨울 때 사람의 뇌파는 진동을 통하여 리듬을 타게 된다고 했다. 내면의 리듬을 타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우주의 리듬을 타면 사명감이 생긴다는 말에 나는 조금 감동했었다. 그래, 한번 해보자! 그의 말대로 우주의 리듬을 타고 바람의 리듬을 느끼게 되면 나도 하늘의 뜻을 조금은 알게 되겠지, 그런 마음이었다. 풍류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천지조화의 뜻을 알아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지.

 나 같은 올챙이이야 그런 큰 뜻은 알 리가 없고 그저 고달픈 현실 생활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즐겁게 살아갈 줄 아는 지혜가 필요했다. 그리고 일년동안 부지런히 쫓아다니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노래하고 춤추며 풍류도인의 흉내를 내었다.

 

 

 풍류도의 공식적인 기원은 통일신라 때 학자였던 최치원의 난랑비서문에 처음 등장한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하는데, 실로 이는 삼교의 가르침을 내포한 것으로 뭇 생령과 접하여 이들을 감화시킨다”

바람 풍(風)자와 물 흐를 유(流)자가 합쳐져 된 풍류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바람이나 물의 흐름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성품이 고지식하지 않고 물과 바람처럼 융통성이 있으면, 속됨을 떠나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운치와 멋스러움이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멋이 가무를 즐기고 철따라 물 좋고 산 좋은 경관을 찾아 노닐면서 자연과 기상을 키워나가는 방법으로 발전했다. 그러므로 풍류를 아는 사람은 현대적인 지성인이라 할 수 있으나 자유분방한 한량에게 함부로 붙일 이름은 아닌 것이다.

 

 춤과 노래는 각박한 세속적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인생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순수함에 잠겨보는 삶의 여백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그때 나는 살아오면서 감내해야 했던 여러 가지 어려움과 아픔들을 놀이로써 해소하거나 감히 승화시키는 방법들을 배우게 되었다.

 얼음골 호박소 부근으로 일박 이일 동안 수련을 갔을 때의 일이다. 인적이 없는 산속 오두막집에서 남녀노소 삼십 여명의 학생들이 각지에서 모였다. 그는 북이야말로 가장 원시적이며 세계 어느 곳에서나 사용하는 훌륭한 악기라고 했는데 그날은 다른 방법으로 두들기게 했다. 북 중앙에 미운 사람의 이름과 잊어버리고 싶은 것들을 글로 적어 테프로 꽁꽁 붙였다. 그리고 불을 끄고 힘껏 내려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미적미적 서로 눈치를 보던 사람들이 얼마지 않아 모두 몰입상태에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한 시간쯤 지나서 불을 켜보니 사람들의 형상이 말이 아니었다. 붙여놓은 종이는 북채에 맞아 찢어지거나 날아가고 머리카락은 풀어진 채 땀에 젖어서 귀신 형상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제 설움에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사람, 소리를 너무 질러서 목소리가 변한 사람, 그야말로 굿판이 따로 없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어릴 때 본 굿판을 떠올렸으며 그러한 행위들이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얼마나 좋은 것인지 절감했다. 실재로 고부간의 갈등으로 우울증 증세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거짓말처럼 나아버린 것을 보았으니까, 다음 날 아침에 보니 가슴속 울화를 풀어낸 사람들의 얼굴들이 달덩이처럼 훤해 있었다.

 

그는 살아가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방법으로 신명나게 노는 것 이상 없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방법을 생활과 연결시킨 우리 조상들은 참으로 대단한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었다고 설명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매달 모여서 놀았고 대동제를 벌이고 나면 가슴이 열려 저절로 단합이 되었으며 또한 노동과 연결되는 에너지를 만드는 작업이었다고 했다.

<논다>라는 말의 어원이 <놓다>에서 왔으며 거기서 <노래하다> <놀이하다> 라는 말이 생겼다는 말에 나는 공감했다.

논다는 말은 놀>놀이>에서 나왔다고 하며 놀다보면 놓아지고 놓으면 원하는것을 찾게된다고 이야기한다 ,노는것도 얼씨구 잘노는것이 있고 얼빠져서 노는것이 있단다 노는것도 마음이 놀때 부르는것이 놀애(노래)가 되고 , 마음이풀려서 하는짓이 놀음(노름-도박)이 되니 이왕이면 놀음판으로 놀지말고 너도좋고 나도좋은 놀애를 부르면서 인생을 놀고,놓고,찾아보자고한다

 <놀아버리자>라는 말은 놀면서 버린다는 말이다. 우리가 신명나게 놀 때는 아무런 잡념 없이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집착하고 있던 것을 과감하게 놓는 순간, 전혀 다른 방향을 솟구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전달하려 무척 애썼다.

 

돌아보면 풍류도인 신현욱은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들에게 혼신을 다해 노는 방법을 가르쳤다. 두 손바닥으로 단전을 두들기는 것도 그냥 두들기는 것이 아니라 호흡과 리듬을 타게 했고 춤을 출 때도 몸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가슴 속에 있는 율려를 일깨우는 춤사위를 가르쳤다. 율려는 우리 내부에 잠들어 있는 우주의 원시정보로써 생명 현상이며 춤과 노래로써 극대화할 수 있다. 규칙적으로 숨을 쉬는 생명의 바탕 위에서 놀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 문득 언어로 표현할 수없는 영적 체험을 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자주 쉽게 접근하지는 못했다. 생명의 법칙을 노래하면 음악이 되고 사상으로 표현하면 철학이 되며 아름다운 말로 읊으면 시가 되고 예술이 된다. 율려는 지식으로 체득되는 것이 아니라 무념무상의 상태, 즉 생각이 끊어진 자리에서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잡념이나 사념, 이기심과 질투심, 지배와 인정의 욕구를 가지고는 율려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다. 생각을 놓아버리고 깊게 몰입했을 때 비로소 우주의 겹겹이 서려있는 율려의 한 자락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 돌연 깊은 통찰이 머릿속으로 섬광처럼 지나가고 때로는 온몸을 가로 지르는 것을 느끼며 전율하게 된다.

 

허균의 한중록을 보면 풍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 선비가 하늘에게 기도한다.

“상제님, 제가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비를 피할만한 집이 있고 끼니 거르지 않을 정도면 되고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면서 즐기고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상제가 하는 말

“그러냐? 그것은 바로 신선의 도인데 네 꿈이 너무 크구나. 네가 부와 명예를 달라고 한다면 바로 줄 수 있겠는데...그것은 나도 어렵구나.”

상제의 수준에서도 사람의 그런 팔자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고 풍류스러운 삶이 그리 쉽지 않다는 대목이다. 아무튼 그렇게 천지분간 모르고 일년쯤 어울려 북 치고 장구를 쳤더니 어느 순간 깨달음 비슷한 것이 왔다. 노는 것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혼자서 자기의 호흡과 함께 신명나게 놀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고수중에서도 고수라는 것이었다.

 

차를 한잔 놓고 마주 앉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흔히 도인이라 하면 긴 머리에 수염을 기른 사람이 연상되지만 그는 여전히 깔끔한 외모에 단정한 옷매무새였다. 평소 지나간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라 일년동안 어울려 공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연유로 도인의 길에 들었는지 궁금했다.

“도인은 무슨? 도가 뭐 별 것입니까?”

사람들이 하나 둘 다니면 없던 곳에 길이 나고 길이 나면 여러 사람들이 다니기 마련이라며 자기는 그냥 길을 가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길이나 道나 같은 글자를 쓰고 있었다.

그는 이십 대 초반부터 포항제철에서 근무를 했다고 했다. 어느 날 이사직에 있는 오십 대 상사와 함께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취중에 하는 말을 듣고 내심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가 목표로 하는 자리에서 최고 학벌에 최고 대우를 받는 상사가 기껏해야 집 한 채에 애새끼 키운 것 밖에 없다는 넋두리를 하는 순간, 앞으로 살아갈 자신의 삼십년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일까?”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내는 둘째아이를 임신 중이었는데 어떻게 살아야 자식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화두까지 생겼다. 그런 회의에 빠져있는 중에 낚시를 갔던 매제가 영덕에서 스킨스쿠버를 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 일이 허무감으로 이어지면서 직장생활하면서 집 한 칸 장만하고 애들을 키우며 가끔은 까만 얼굴로 술을 마시는 뻔한 일생을 살 수 없다는 자각이 일어났다. ''무엇이 진정 잘 사는 인생인가''고민 끝에 '' 무언가 배우고 익혀서 사회에 공헌을 하는 것이 보람된 삶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되고자 했고

그렇게 시작한 것이 영어 공부였는데 몇 달 만에 좌절되면서 마음은 더 비참해 졌다. 그런 중에 우연히 장구를 들고 가는 사람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따라갔다. 북이나 장구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그날 꼭 영어 선생이 아니라도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면 이것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일년 정도 배우다 보니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고 그런 중에 문화원에서 농악지도 강사를 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로당 등을 돌아다니며 무료 봉사를 하는 동안 그는 비로소 자신의 삶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표현했다.

 

소리를 배우게 된 계기는 경로당 공연을 다니는 중에 한 할머니의 <모심기 노래>를 듣게 되었는데 어찌나 잘 하는지 배우려고 했더니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저기 있지.”

하며 손가락으로 무덤을 가르켰다고 했다. 그때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소리를 찾게 되었는데 그 바람에 방송도 꽤 탔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동안의 행적을 돌아보니 정말 올바르게 사회에 이바지 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몇 가지만 나열되었을 뿐 달라진 것도 공헌한 것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게다가 진정한 선생의 의미와 그것을 명제로 불로소득을 취하고 있는 모습과 정직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좌절감과 무력감이 찾아왔다. 그는 홀로 영일만 바닷가에 나가 고민하고 회의하며 혼자 장구를 치는 세월을 보내다가 한순간, 생각이 끊어진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예술로써 천지의 마음을 전하라는 계시와 함께 기술의 음악이 아닌 도의 음악을 하라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

 

스승을 찾아 헤매다가 드디어 만나는 순간은 극적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버티었는데 짧은 시간에 엄청난 에너지의 교류가 있었다고 했다.

“감의 씨를 심으면 고욤나무가 될 뿐 감나무는 될 수 없다. 고욤이 감나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감하게 가지를 자르고 그 줄기에 감나무를 접붙이는 방법뿐이다.”

그때 아이들이 아홉 살과 여섯 살이었으니 먹고 사는 문제가 당장 걸렸다. 그러나 인생은 어느 순간의 선택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법, 이 세계를 깨달으면 더 나은 부모가 될 것 같았다.

“힘들지만 내 가지를 자르자.”

어느 길을 가든 무슨 일을 하든 힘들기는 마찬가지라 싶었다.

“그것이 제 운명입니까?”

“그렇다.”

“그렇다면 가겠습니다.”

영적 길을 가겠다고 선택하는 순간 그는 천년의 업장이 녹아내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하여 잘나가던 회사를 던지고 스승을 따라  나선다.

순간 여러 가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스쳤지만 단학지도자의 길을 가게된다 그리고 십년 죽어라 공부하면 최고가 될 것이라는 꿈과 함께! 그때 그의 나이 서른여섯 살이었다.

 

스승을 알려면 스승이 품고 있는 비전을 알아야하는데 그는 스승에게서 민족과 인류를 위하여 봉사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보았다고 했다. 스승의 미래가 나의 미래며 이제부터는 하늘과 스승의 말만 들을 것이라 각오하고 공부를 시작하면서 천부경을 알게 되었다.

천부경은 구전(口傳)되어온 우리나라 고유의 경전이다. 한웅께서 친히 신지 혁덕(神誌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으로 그것을 썼다. 훗날 고운 최치원(崔致遠)이 전고비(篆古碑)를 보고 고쳐 써서 세상에 전하였다. 천부경은 우리 한겨레 사상의 뿌리일 뿐만 아니라 온 누리 사상의 씨알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간결한 경전 속에서 신비하고 현묘할 만큼 세계 사상의 주류라고 할 도교, 불교, 유교, 기독교 사상 등의 근본 원리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생성원리와 진화과정, 완성을 비롯하여 땅의 섭리와 인간의 본성, 그리고 미래의 개천(開天)까지 담은 경전이다. 천부경을 이루고 있는 글자가 여든 한 자로서 글자 한 자마다 잠재되어 있는 고차원적인 공간은 무한하게 펼쳐지게 되어 있다. 천부경은 하늘의 최고 경지에서 직통한 말씀이므로 쉽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은 암시성이 품어 있는 경전이라는 데에 그 의의가 크다. 그 핵심이 수리(數理)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곧 우주와 만물의 자연법칙이 고차원의 수리학으로 볼 때 천부경은 우주의 두뇌중추를 가리키는 이법(理法)으로 승화되어 있는 것이다.

천부경을 내 것으로 하고 나니 지식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세상의 모든 원리가 보이더란다. 그는 스승의 스승이 단군이었고 단군의 꿈은 홍익인간이라는 것에 깊숙하게 뿌리를 내렸다. 홍익이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시스템이다.

오년동안 공부 끝에 드디어 하산하라는 말을 듣는다.

“너는 단학으로 깨달았지만 두드리는 것으로 세상에 나가 봉사하라.”

서울에 풍류도 센터를 개설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우리가 풍류도 수련을 할 때는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범일동에 있는 단학 센터에서 더부살이를 했었다. 육 개월쯤 지나서 연산동에 풍류도부산지원의 간판을 걸 수가 있었다. 세상일이 복잡해지는 만큼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피난처를 찾듯이 모여들었다. 만나면 헤어지는 날도 있는 법, 나는 육 개월쯤 더 다니다가 그만두게 되었으니 그 뒤 소식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전국에 골고루 센터가 생기고 지도자들도 늘어나서 확장일로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뿐이었다.

이번에 만나보니 그는 국내활동보다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다른 나라에 풍류도를 알리는데 더 열심이었다. 돌아보면 직접 그의 지도를 받은 우리는 굉장한 행운아였던 것이다.

“스승이 仙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면서 전 세계에 선도의 바람을 일으키라고 했지요, 어쨌든 나는 이제 바람잡이 노릇이나 실컷 할 계획입니다.”

 

그의 스승인 일지 이승헌은 20여 년 간 인간의 뇌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를 하여 <한국뇌과학연구원>을 설립하고 보급 중인데 뉴욕시 미셀 블룸버그 시장이 뇌 교육 연구 및 보급이 교육현장의 문제해결에 기여하고, 뉴욕 시민들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키는데 기여한 공로를 기리면서 2009년 1월 8일을 <뇌교육 데이>를 지정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시작된 뇌 교육은 세계 교육계에 대안 패러다임으로서, 인류의 건강과 행복 증진을 위한 뇌 활용 건강행복운동으로 유엔을 중심으로 열어가고 있다고 했다. 인간의 운명은 뇌 속에 있는 정보의 질과 양에 따라 좌우되며 그 정보가 얼마나 창조적이고 평화적인가에 따라 개인의 운명뿐 아니라 국가와 민족, 나아가 인류 전체의 운명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08년 6월에 UN본부에 뇌교육 협회가 창립 축하공연을 했다고 했다. 그때 비로소 꿈을 이루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 하버드 대학을 비롯하여 백 개 대학에 풍류도 서클을 만들었고 몸을 통해 뇌를 일깨우는 방법을 전달하고 있다고 했다.

어떤 방법으로 서클을 만드느냐고 물었더니 학교 앞에서 사물놀이를 하면 저절로 학생들이 모여들어 어깨를 들썩이게 되는데 그들 중 24명이 배우겠다고 싸인을 하면 학교에서 서클 방과 함께 유지비 500불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백 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물놀이 장단에 신나지 않을 사람이 없을 테니까.

미국에 단학 서클이 360개, 캐나다에 12개, 일본에 360개, 한국에 500개 가있는데 올해 전 세계에 3,600개를 더 만들 계획이란다.

그게 가능한가? 되물었더니 스승의 계획은 페스트푸드 가게인 맥도날도가 전 세계에 26,000개 정도 있으니 단학센터는 그보다 만 개가 더 많은 36,000개를 만들어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나의 속 좁은 가슴으로는 그만한 배포도 없을뿐더러 상상이 가지 않았다.

“문화 수출은 엄청납니다. 우리나라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요. 부산시도 2월 15일을 뇌 교육의 날로 선포했어요. 어제 그곳에 다녀왔습니다. 시장도 만났고요.”

“단학에 대하여 안티들이 많던대요? 단군상을 훼손하는 일도 있었잖아요?”

“사람마다 생각도 다르고 가치관이나 시각이 다르니까 탓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저는 스승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돈이 탐욕의 대상이 아니라 활용되는 것을 보았고요. 영적 공부를 시작하면 분별이 없어지면서 영적 완성하기 위해 관심이 많아지지요. 마치 아이를 키우면서 손익 계산을 하는 엄마가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을 보면 됩니다.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 뇌의 구조가 바뀐다고 합니다. 모든 관심이 오직 아이에게 향하는 것이지요. 영적인 자각이 오면 그처럼 분별이 없어지면서 그쪽으로 정진하게 됩니다. 여기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이비가 생기기도 하지요.”

“아이들도 많이 컸지요?”

아이 말이 나오는 바람에 화제가 바뀌었다.

“무엇보다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지요. 그때 직장을 그만두고도 두 달 동안 말을 못 했어요. 내 말을 듣고 아내는 울기만 하는데 그때 가족에게 잘해 준다는 것이 뭘까? 새삼 생각했어요. 생명의 본질은 좋은 씨앗을 퍼지게 하는 거! 즉 번식이거든요, 어쩌면 신의 속성도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닐까요? 나는 그때 육체적 생명, 사회적 생명을 아내에게 떠맡기면서 내가 만일 영적 생명력을 얻어 보탠다면 자식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부모가 될 거라 믿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아들에게 그 말을 들었습니다.”

몇 달 전에 아들이 군대에 갔는데 부대까지 태워다 주는 기회가 있었다. 그 때 아들이 아버지의 길을 열심히 가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존경스럽다는 말을 했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2004년부터 각 산업체에 풍류도 수련 강의를 나가는데 자신이 다니던 포스코에 특강을 갔다가 동료들을 만났다고 했다. 그들은 여전히 직장생활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까만 얼굴로 술을 마시고 있더라고 했다. 나는 행여 그가 옛날 동료들 앞에서 우월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그는 도리질을 했다.

“사람마다 다 자기의 길이 있고 어느 하나도 귀중하지 않는 게 없어요, 우리는 모두 하나지만 모두 같은 길을 갈 수 없지요, 확실한 것은 의식의 확장에 따라 삶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의 선택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것은 확실하지요. 선택은 누구라도 할 수 있어요, 다만 다른 것을 선택할 때는 내가 잡고 있는 것을 놓아야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아깝고 두려워서 놓지 못하는 겁니다. 잘 놓으려면 잘 놀아야해요. 그냥 나는 이렇게 놀고 다닙니다.”

그냥 놀고 다닌다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듣고 보니 그랬다. 그때 나는 정말 잘 놀았었다. 그래서인지 이런저런 일들을 겁 없이 저질렀고 감당하느라 애를 먹으면서도 행복했었다. 문득, 요즈음 내가 노는 법을 많이 잊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대신 늘어난 것은 까닭모를 두려움과 서글픔과 방향을 알 수없는 고집뿐, 무엇보다 이제 그렇게 놀 의욕과 힘이 없어졌다. 문득 한판 잘 어울려 놀고 나면 그때, 복부에 팽팽했던 그 에너지의 느낌을 다시 경험할 수 있을까? 그리워졌다.

 

그날 밤 나는 그런 마음을 담아 메일을 보냈다. 바로 답장이 왔다.

“과거의 삶은 미래를 위한 발자취입니다. 과거의 삶이 나'라는 것에 집착하여 방황하다가 나가 아닌 곧 우리라는 삶으로 변하면서 건강과 행복과 평화를 찾았다는 것을 장황하게 이야기 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의 저의 화두는 한민족의 새로운 탄생과 지구경영을 위하여 입니다. 아주 거창하지만 스승의 가는 길을 도우면서 그것이 점차로 현실로 다가옴을 느낍니다. 이왕이면 미래지향적으로 많이 써주세요 얼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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